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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숲 속의 방

루디아난 2019. 6. 18. 12:50

나의 숲 속의 방

 

일찍이 1929년에 영국의 작가 버지니아 울프는 자기만의 방이라는 작품을 썼다. 여성들이 자신의 글을 쓸 수 있으려면 자기만의 방이 필요하다는 내용이다. 교육과 직업의 기회가 여성들에게 주어지지 않던 당시, 누구의 어머니, 누구의 아내, 누구의 딸로서가 아니라 진정한 자신의 마음과 감정을 담은 글을 쓸 수 있으려면 자기만의 시간과 성찰, 그것이 가능한 자기만의 방이라는 물리적 공간 그리고 그것을 가능하게 할 경제력까지도 반드시 있어야 한다는 뜻이다.

나에게는 나만의 방이 있다. 그것은 나의 숲 속의 방이다. 숲 속의 방이란 1987년도인가 여성 작가 강석경이 발표한 소설의 제목이다. 군부독재 정치와 속물적인 기성세대의 어두운 사회환경 속에서 대학에 갓 입학한 여주인공이 겪는 방황, 고뇌, 사랑을 그린 작품이다. 글 속에서 여주인공은 결국 누구와도 진정으로 소통하지 못하고 위로받지 못한 채 자살로 생을 마감한다. 그 작품은 아름다운 숲 속과도 같은 눈부신 젊은 날들이지만 그 이면에는 숲 속의 음습한 벌레들이나 짐승들 같은 회색의 고뇌와 방황이 함께 깃든 이미지를 띠었다.

나는 언제부터인가 힘든 일이 있으면 나의 집 뒷 편 동산의 숲길을 걷게 되었다. 사람들에게 부딪쳐 화가 날 때, 상처받았을 때, 속상할 때, 숲 속 길을 걸었다. 한참 걷다 보면 화는 가라앉고 상처도 잊혀지고 마음이 가벼워진다. 바람 소리, 새 소리, 벌레 소리, 나뭇잎 소리가 들려왔다. 나뭇잎 사이로 비추는 햇빛은 너무도 눈부시다. 참 아름다워라, 주님의 세계는... 이 찬송이 저절로 흘러나온다.

숲 속, 더 나아가 자연을 대하는 태도는 다양하다. 큰 벌레가 윙하고 날아들면 갑자기 겁이 난다. 어딘가에 숨어 있던 짐승이라도 튀어나온다면... 어두워진 밤의 숲은 무섭기도 하다. 고대에 자연은 두려움과 경외의 대상이었다. 근대 이전 서구에서는 자연을 미지의 세계, 위험하고 두려운 대상으로 보고 그것을 앎으로써 정복해야 하는 것으로 보았다. 인간과 자연을 이분법적으로 그리고 인간중심적으로 보았다. 자연은 여성과 더 관련 있는 것으로 그리고 문명은 남성과 더 관련 있는 것으로 보기도 하였다. 따라서 자연과 여성은 열등하다고 여겨졌으며, 이는 현대에 와서 생태주의와 페미니즘에서 비판되어졌다.

나는 숲 속의 길을 걸으며 나 역시 자연의 일부임을 느낀다. 그리고 나와 자연은 전혀 열등하지 않고 하나님이 보시기에 좋았다 라고 말씀하신 좋은 작품임을 느낀다. 자연이, 숲이 빛나고 싱그러울 때, 그 안에서 걷는 나도 빛이 나고 싱그러워진다. 그리고 숲 속을 걷다 보면 창세기 3;8의 말씀 날이 저물고 바람이 서늘할 때에, 주 하나님이 동산을 거니시는 소리를 들었다라는 구절을 떠올린다. 나의 이 뒷 동산 숲 길에서도 하나님이 거닐며 마치 나에게 말을 걸어오는 듯한 느낌이 든다. 그 음성은 천둥이나 번개, 폭풍과도 같은 두렵고 채찍질하는 호령이 아니다, 그것은 구약의 엘리야가 낙심하고 지쳐 쓰러져 불평하고 한탄할 때에, 그가 들었던 세미한 위로의 음성일 것이다. 나의 생각과 경험을 넘어서며 새롭게 일하시는 하나님의 사랑의 음성일 것이다. 아름다운 숲 속의 방에서 그 하나님은 오늘도 나에게 말 걸어 오신다. 이렇게 좋은 숲과 자연을 주신 하나님께 감사한다. 그리고 이 사랑과 감사를 함께 나누며 살아가는 교회와 형제자매, 아가페 모임을 주신 데에 감사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