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왜 나는 감정이 두려운가?

루디아난 2019. 10. 29. 14:34

왜 나는 감정이 두려운가?

 

정신건강의학과 김 모 선생의 말을 기억한다; 나의 모든 감정은 타당하다, 존중되어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불안, 우울 생긴다, 감정을 직면하는 훈련이 필요하다. 감정에 서툰 사람은 양가감정에 빠지기 쉽다. 생각만 가득찬 사람은 강박적인 사람이다.

 

 

나는 감정에 서툴다, 나는 나의 감정을 존중하지 않고 억압하곤 한다. 나는 감정을 직면하는 것을 두려워한다. 나는 생각들로 가득 차서 강박적이 되곤 한다. 나는 정신분석과 정신병리에 대한 영어 원서를 번역하는 일을 한 적이 있다. 그 책 내용 중에 정신적 고통을 겪는 사람들의 사례들이 소개되어 있었고, 그 중에 자신이 마치 연기처럼 사라져 버리거나 땅에 스러져 조각 조각 파편이 되어 버리고 없어져버리는 이미지의 경험이 있었다. 나도 그런 비슷한 경험을 한 적이 있었다. 누구에게도 말하지 못한 느낌이고, 싸한 (서늘한) 감정, 그리고 두려운 경험이었다. 그것이 아마도 해체 불안, 붕괴 불안일 것이다. 어린 시절에 양육자가 무조건적인 사랑으로 아이의 욕구를 만족시켜 주고 정서적 교류의 관계를 형성하여, 아이의 느낌, 감정을 안아주고 담아주는 역할을 잘 하지 못하면, 아이는 건강하고 단단한 자아, 자아와 타자의 경계를 형성하지 못하여, 자신이 마치 연기처럼 사라지거나 파편화되어 부서지는 느낌을 갖는다는 것이다. 나도 도널드 위니캇이 말한 그런 충분히 좋은 엄마 (good enough mother)의 양육을 받지는 못하였다. 누구나 어린 시절 상처가 있다. 나 역시 긴 시간 그늘과 어둠의 터널을 헤맸었다.

신학을 공부하여 강북구에 있는 대학원에 처음 들어갔을 때 나는 기숙사에서 우연히 한 편의 영화를 보게 되었다. 남미를 배경으로 하고, 실화를 바탕으로 한 영화였다. 너무도 강렬하게 느껴진 장면이 있었다. 남자 주인공이 차를 마시는데, 사실은 그의 뒤에 그의 어머니가 앉아서는 그 어머니의 팔로 찻잔을 들고 남자의 입에 잔을 대고 남자가 그 잔의 차를 마셨다. 정면에서 보면 완전히 그 남자가 자신의 팔로 차를 마시는 모습이었다. 그러나 실상은, 그 남자의 뒤에 붙어 앉아 있는 어머니의 팔이 찻잔을 들어서 남자에게 차를 마시게 하고 있었다. 그 장면이 너무도 무서웠다. 내 자신이 엄마와의 관계가 불편하고 해결되지 않았기 때문에 나의 모습일수도 있겠다 생각했던 것 같다. 그 영화의 마지막 장면에는 구약성경 시편의 구절이 나왔다. 내가 주를 향하여 나의 손을 드나이다, 아마 이런 구절이었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