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튤립과 물의 나라, 네덜란드

튤립과 물의 나라, 네덜란드

 

네덜란드... , 풍차, 튤립의 나라... 관광객들이 매우 많아 붐비다 . 물과 운하가 곳곳에 이어져 있다. 나무로 만든 튤립 모형 꽃들, 나막신 모형들, 너무 아기자기하고 예쁘다. 맑고 환한 여름 날씨에 암스테르담의 거리엔 사람들이 활기차게 움직이고 있었다.

네덜란드에서 실제 튤립 꽃은 본 기억 없다..색색의 예쁜 나무로 된 튤립 모형들이 많았다. 암스테르담은 운하의 도시답게, 곳곳에 물과 다리들이 있다. 잔센스칸스라는 이름의 풍차마을 이란 곳에 가서야 풍차들, , 나막신들을 보았다. 파란 잔디와 풀밭이 펼쳐져 있고, 호수가 잔잔히 자리하고, 그 너머로 약간은 장난감 같아 보이는 풍차들이 서 있었다. 거대하거나 현대적이지 않지만, 예쁘고 앙증맞은 느낌이 들었다. 그 곳은 관광객들로 붐볐다. 세계적인 낙농국가답게 네덜란드 잔센스칸스에는 우유를 가공하여 다양한 치즈를 만드는 과정을 보여주는 등, 치즈 박물관(?)이 있었다. 온갖 이름도 다 알지 못하는 다양한 종류의 치즈들이 있었고, 조금씩 맛볼 수 있는 시식코너도 있었다. 그 곳에서 안내하는 여자가 있었는데, 그녀는 내가 본 중의 아마도 가장 키가 큰 여자인 것 같았다. 정말 다리가 길었다, 너무 길어서 멋있다기 보다는 이상하게 느껴질 정도였다. 아름답고 낭만적인 네덜란드 사람들보다는, 빈센트 반 고흐의 그림 감자 먹는 사람들에서 보듯이, 투박하고 생활에 힘겨운 선이 굵은 사람들을 그린 그림이 눈에 들어왔다. 그들은 옷이 화려하지 않았고, 작업복처럼 보였으며, 얼굴엔 여유나 미소가 없었다. 한켠에는 다양한 형태와 색깔, 크기의 나막신들도 진열되어 있었다. 작고 무수한 은빛으로 빛나는 커다란 나막신의 모습이 매우 멋져 보였다.

세계적인 예술가, 화가인 고흐와 세잔느의 고국 네덜란드.. 기념품들과 장식품들 중에는 고흐, 세잔느의 그림들을 넣은 작은 유리컵, 아기자기한 열쇠고리, 옷 등이 많다.

고흐는 자기 자신의 귀를 자른 것으로, 나는 젊은 대학시절에 알았었다. 그것은 나에게 매우 강한 충격과 인상으로 다가왔다. 왜 그랬을까? 고흐는 개신교 목사의 아들이었고, 그래서인지 신학교에도 잠시 다녔었고, 선교사로도 일을 하였다. 그러나 그것은 고흐의 길이 아니었다. 그는 이후 서점의 점원으로도 일을 하였다. 그는 매일 술을 마셨다. 그의 동료인 고갱과도 결국에는 불화하였고, 그의 그림은 비싼 값을 받은 적이 없었다. 고흐는 나이가 들어서도 동생에게 생활비를 의지하였다고 한다. 그는 환청과 이명에 시달렸다고도 하며, 그러한 과정에서 자신의 귀를 잘랐고, 그 후 정신병원에 입원하였다. 고흐의 그림은 너무도 아름답다. 그림에 전혀 문외한인 나이지만, 그의 그림은 인상파 화가답게 매우 인상적이고 독창적이다. 별이 빛나는 밤, 밤의 카페, 감자 먹는 사람들 등... 고흐가 목사의 아들이었고 신학교에 다녔었다는 사실이 나에게 강하게 와 닿는다. 그 역시 인생과 세상의 기원, 의미, 인생의 방향 등에 대해 묻고 또 물었을 것이다. 성서를 읽으며, 일을 하며, 자연을 바라보고 그림을 그리며, 생계와 돈에 쪼들리며, 자신의 내면을 들여다보며, 때로는 기도하며... 그리고 정신의 질병으로 극심한 고통과 쓰디쓴 소용돌이를 겪었을 것이다. 그러나 그는 붓을 놓지 않았다. 그는 그림을 그렸다, 그것이 고흐가 살아가는, 무거운 인생을 살아내는 그만의 방식이었을 것이다. 아픔과 혼돈은 그의 붓을 통해 화폭의 아름다움으로 그려졌다. 인생의 아이러니이다.